산행발자취모음

[127차] 필봉산(923.2), 왕산(848) 경남 산청 금서면

비로봉 2006. 12. 11. 15:41

- 일자 : 2006년 12월 10일(일요일)

 

- 산행지 : 필봉산, 왕산  (경남 산청)

 

- 산행경로 : 특리교 - 출렁다리 - 안부 - 필봉산(848) - 왕산(923) - 망바위 - 강쇠약수 - 망경대 - 유의태약수 - 수정궁터 - 구형왕릉 - 김유신사대비 - 주차장 

 

- 함께 : 아내와 지호

 

- 산행개요 : 차량회수 관계로 덕양전에서 특리교까지 시외버스를 이용하려고 계획했으나 차 시간을 놓쳐 대구에서온 산악회버스(25인승) 기사님께 부탁하여 우리가족 3명이 버스를 대절하여 구형왕릉 주차장에서 특리교까지 이동한다.

 

특리교에서 출발하며...

 

출렁다리


움막집 앞


계곡을 건너며


하늘도 한번 쳐다보고


가까운 685봉과 멀리 황매산

 

아찔한 바위

 

필봉산 정상부

 

필봉산 오름길



 

필봉산 정상에서


필봉산 정상

 

왕산가는 길



 

왕산 정상에서


잘못 세워진 왕산 정상석(905.8봉)과 필봉산 그 뒤로 웅석봉

 

강쇠약수, 물줄기는 강쇠가 아님


망경대


望京臺(망경대:서울을 바라보았다는 뜻)

農隱閔先生杖屨之地(농은민선생장구지지)단기4294년4월8일 立

高麗禮儀判書農隱閔先生杖屨之所(고려예의판서농은민선생장구지소)

고려 공민왕때 禮儀判書(예의판서)를 지낸 농은 민안부선생은 태조 이성계의 조선 건국에 반대한 두문동 72인의 儒臣(유신)가운데 한분으로, 고려에 끝까지 충절을 지키기 위해 지리산 기슭인 산청군 생초면 대포리에 은둔생활을 하였다. 선생은 초하루와 보름에 이곳 왕산 중턱 바위에 올라 송경(고려의 수도(지금의 개성))을 향해 절을 하며 고려를 그리워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선생의 절개와 의리를 기리기 위해 이 바위를 望京臺(망경대)라 부르게 되었다.

 

류의태 약수

 

가락국의 10대왕(마지막왕)인 구형왕릉(김유신의 증조부)





 

필봉산 ~ 왕산 산행후

 

류의태선생은 1516년(조선 중종11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하여 허준선생(동의보감의 저자)의 스승으로 조선중기 최고의 신의로 알려져 있으며 자신의 몸을 제자 허준에게 시술토록하여 해부의학의 효시를 이룬 살신성인의 의술가 이시다.

본 약수는 돌너덜 아래의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로 위장병과 피부병, 불치병 치료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한 조'의 기록에 의하면,

3세기 당시에 한반도 남부지역에는 24개의 소국들이 있었는데,

그 중에 12개의 소국을 변한(弁韓)이라 하고,

나머지 12개의 소국을 진한(辰韓)이라고 하였다.

김해의 구야국(=가락국, 시조 김수로왕)은 변한 12국 안에 들어 있으며,

그 변한 12국으로 이루어진 연맹체를 가야사에서는 ‘전기 가야연맹(前期加耶聯盟)’이라고 부른다.

3~4세기에 변한 12국은 김해의 가락국(=가야국=구야국)을 중심으로 통합되어 변한 소국연맹체, 즉 전기 가야연맹을 이루고 있었다.

 


구형왕(가락국의 마지막 10대왕, 김유신의 증조부)릉의 전경


구형왕릉 앞에 '傳'을 붙인 이유는 전해진다라는 의미로 확실하지 않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하루빨리 역사적 고증을 통하여 명확히 밝혀지기를 바란다.















  

이 노~옴










新羅太大角干純忠壯烈興武王金庾信射臺碑

(신라태대각간순충장열흥무왕김유신사대비)란 글씨가 있는 비석으로 오른쪽에 있는 공터는 구형왕의 증손자인 김유신이 화랑으로 활동하던 청년시절 구형왕릉에 들어와 능을 지키는 시릉살이를 하며 무예를 연마하고 활을 쏘던 곳을 기념하여 세워 놓은 것